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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여인의 이야기 - 국회의원 김재원
등록날짜 [ 2018-09-03 18:52:07 ]
한 여인의 이야기 - 국회의원 김재원

 내가 고향 마을에서 5리 쯤에 있는 하령국민학교에 입학한 것은 1971년 3월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집 친척의 소개로 강원도 영월의 광산에서 일했다.

 일제 시대 사할린의 탄광 막장에 강제징용을 당했던 할아버지는 심한 진폐증을 앓아 그 무렵에는 밤낮 없이 기침을 하며 거동이 힘들었다. 결국 고향집에서는 할머니가 우리 4남매를 길렀다.

 난생 처음 학교에 가는 입학식날 아침, 누나가 내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아 내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그때 누나는 7학년을 시작했다.

 큰형은 이미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누나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누나가 중학교를 못간다는 소식을 듣고 6학년 담임을 계속 맡게 된 이웃 마을의 이종계 선생님께서 찾아와 집에서 놀지 말고 1년 더 학교에 다니라고 했다. 결국 누나는 출석부에만 이름을 올려놓은 7학년생이 되어 하령국민학교를 1년 더 다녔다. 그 시절에는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만든 두부모처럼 생긴 빵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7학년인 누나는 다른 아이가 결석하지 않는 한 그 빵을 얻어먹지 못했다.

 담임인 이종계 선생님은 누나를 시켜 아이들 숙제검사도 하고, 공부를 가르치게도 했다. 원래 공부를 잘 했던 누나는 그 무렵부터 어른이 되어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다. 집에서도 어린 나를 데리고 늘 선생님 놀이를 했다.

 이듬해, 일하던 광산이 대형사고로 망하고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가 집에 있으니, 어머니의 고집으로 누나는 중학교를 진학했고 우등으로 졸업 후 대구의 여자고등학교에 들어갔다.

 1976년초, 새마을운동으로 우리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평생 호롱불을 켜며 살던 산골 마을의 밤이 역사 이래 처음으로 밝아진 무렵이었다. 그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논 여섯 마지기와 산비탈의 밭을 팔고 집도 팔아 대구로 나갔다. 우리 7식구는 대구 원대동의 철길 옆 두칸짜리 조그마한 집에 세를 얻어 살았고 아버지는 부근의 채소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그러나 생활력이 영 신통치 않은 아버지는 1년 만에 얼마 되지도 않은 장사밑천을 몽땅 털리고 집에 들어앉고 말았다. 큰형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했고, 엄마는 대구 3공단의 직물공장에 나갔다. 집에는 늘 아버지와 병든 할머니가 계셨다.

 아버지는 취직시험 나이를 맞추려고 여고 2학년인 누나와 야간상고 1학년인 둘째 형의 호적을 고쳐 나이를 2살씩 올려 주었다. 이듬해 누나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학교를 다니다 말고 공무원이 되었고, 둘째 형은 동산약국 앞에 있던 삼보증권에 합격했다. 출근 3일째 되던 날, 형은 대학을 가겠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학교앞의 독서실에 들어가버렸다. 누나도 형처럼 교대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겠다며 애원했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가당찮은 일이었다.

 결국 작은 형은 대학을 진학했고, 고등학생인 나와 작은형의 학비는 엄마가 직공으로 일하며 벌어오는 돈과 누나의 9급 공무원 봉급으로 이어갔다. 엄마는 그로부터 환갑이 될 때까지도 직물공장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몇 년 후 누나는 동료 공무원인 자형과 결혼했다. 어머니는 예단도 하나 없이 빈손으로 시집보내는 딸에게 눈물을 보이며 미안해 했다. 그러나 누나는 내가 신혼집에 놀러갔을 때  ‘이제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누나는 시집을 가면서 소녀의 조그마한 꿈도 앗아간 질곡에서 탈출한 것이었다. 20대 초반에 당차게 결혼을 선택한 누나는, 딸을 낳고 다시 아들 쌍둥이를 낳아 무던한 남편과 함께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신은 인간의 조그마한 행복도 질투하는지, 누나는 40대 중반에 폐암진단을 받았고 가슴속 허파 절반을 잘라내야 했다. 이어 뇌종양으로 뇌수술 2 차례를 반복했고 암세포는 척추를 거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반복하던 누나의 육신은 점차 쪼그라들고 볼품없이 변했다.

 작년 여름 나는 십수 년에 걸쳐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시골에 머물던 누나를 찾아갔다. 죽음을 앞둔 누나가 힘들게 웃으며 ‘다시 태어난다면 꼭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앞에서 웃어주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한 여인의 서러운 인생에 복받쳐 눈물을 쏟았다.

 며칠 전 그간 용케 생명줄을 이어가던 누나는 60년의 일생을 한 줌의 재로 마쳤다. 홀아비가 된 쓸쓸한 모습의 자형과 어린 조카들 모습도 애처로웠지만, 소박한 꿈도 이룰 수 없었던 누나의 길지 않은 인생이 슬프고 애통했다. 홀로 된 자형에게 ‘좋은 여자 소개해 줄테니 더 늦기 전에 빨리 새장가 들라’며 실없는 소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역사에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이 수도 없이 명멸한다. 수많은 인생을 희생시키며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냥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이름없는 인생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누나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1959년생 불쌍한 우리 누나 김미숙!
 부디 다음 생에는 온몸을 조여든 질곡을 끊어내고, 더 좋은 세상에 한 번만 다시 태어나기를 빌어본다.
윤정배 (ics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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